살아가면서 결코 겪어서는 안 될 고통을 마주했을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웅크리게 됩니다. 혹시나 내 잘못은 아닐까 하는 자책,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운 마음, "말해봤자 무엇이 바뀌겠느냐"는 무력감이 온몸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상과의 문을 닫아걸고 홀로 눈물 흘리고 계실 수많은 피해자분들의 마음에 먼저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
최근 발표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의 통계(2022년 기준)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비율은 고작 2.6%에서 4% 남짓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통계를 아울러보아도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는 이는 약 10%에 그칩니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진실은 너무나 서글픕니다. 피해를 입은 10명 중 9명은 여전히 차가운 침묵 속에서 홀로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수많은 피해자분들과 함께 아파하며 확신하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침묵은 고통의 시간을 연장할 뿐, 결코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범죄를 은폐하는 침묵이 길어질수록 가해자는 대담해지고,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무너지며,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피해자 본인의 영혼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감히 여러분께 '적극적인 신고와 상담'이라는 위대한 용기를 내어주십사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신고는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은 명백한 범죄이며, 결코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세상에 선언하는 고귀한 첫걸음입니다. 빼앗겼던 나의 주체성과 일상을 되찾아오는 단단한 저항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깨고 나오는 10%의 벽은, 침묵하는 다른 90%의 피해자들에게도 "당신도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구원의 신호가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수사 기관을 마주하고 당시의 기억을 다시 꺼내놓는 일 자체가 큰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폭력상담센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려주신다면, 그 이후의 걸음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상담센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믿고 지지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전문적인 상담을 통한 심리적 치유는 물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동행, 무료 법률 지원, 의료 연계까지 일상을 회복하는 모든 여정에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함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내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피해자일 뿐이며, 다시 당당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이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침묵을 깨고 나와 주십시오. 여러분의 그 귀한 용기가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도록, 저희가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늘 곁에서 지키겠습니다. 언제나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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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16:43 송고